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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 신호가 켜지는 것을 보고 움직였는데, 비보호 좌회전 택시가 급하게 내 앞을 지났다. 깜짝 놀라 멈춰 섰다. 자동으로 고개를 돌려 째려보게 되었다. 그 택시 기사도 놀랐는지, 차를 세우고는 비상 깜빡이를 켰다. 저 깜빡이는 차선 바꿀 때 틈을 내어준 차에게 보내는 인사인데. 여하튼 그 깜빡임에 고개를 바로 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동네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말 멋진 길이 있다. 양쪽으로 늘어선 키 큰 가로수가 적당한 그늘을 만들고 차도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이다. 길이가 백 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길 끝에 다다랐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쉬우면 한 번 되돌아갔다가 와도 되잖아. 오늘은 바쁜 일도 없는데.' 그때 보행자 신호등에 초록 불이 켜졌다. 반사적으로 건널목을 건너고 말았다. 그 길 한 번 더 걷겠다는 생각도 날아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