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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찻집을 찾았다. 내일까지 꼭 읽어야 할 책이 있어서, 자리에 앉자마자 그 책을 꺼냈다. 그런데 테이블 위에 책 한 권 달랑 올려두려니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가방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 테이블 위에 두었다. 자리를 떠날 때까지 열지도 않았다. 그래도 덕분에 덜 불편했던 것 같다.
며칠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다니며 끼적거렸더니만, 이제는 또 손글씨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이것도 나이 탓인 것 같은데, 뭔가를 며칠만 손에서 놓으면 급격히 실력이 떨어진다. 손가락에 금방 힘이 빠질 것만 같다. 안 그래도 괴발개발인데, 더 엉망이 되면 읽을 수나 있을까? 요일제라도 적용해야 할까?
다시 노트북 컴퓨터 들고 다니기로 했다. 손으로 끼적이는 것이 아무래도 생산성이 떨어져서, 한동안 가방에 넣어 다니다가 무거워서 포기했었다. 가방의 노트북 이외의 다른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사실 내 노트북 자체가 무거운 것은 아니다. 비싼 노트북 집에만 모셔두고 쓰려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고. 사실 손으로 쓰는 것도 잘 안 되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바꾸어 보는 것이 더 크다.
노트북 켜 둔 채로 날을 넘기는 경우가 많다. 메일 확인하려고 오늘 아침에도 노트북 키를 누르니, 어제 보던 웹브라우저가 그대로 나타났다. 여러 탭이 열린 웹브라우저를 닫았다. 그리고 다시 웹브라우저를 띄웠다. 마치 어제를 정리하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심코 노트북의 스페이스 키를 눌렀는데 화면이 켜지면서 곧바로 바탕화면의 아이콘들이 보였다. 뭔가 빠진 느낌이 들었다. 비밀번호! 왜 그걸 묻지 않고 넘어간 걸까? 컴퓨터 입장에서는 당연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것까지도 신경 쓰이는 세상이 되었다.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다녀야 글쓰기 생산성이 올라간다. 알면서도 무릎 건강을 핑계로 종이 노트 들고 다닌다. 손글씨가 주는 맛도 내세우면서 말이다. 질보다 양이 우선일 때도 있다. 익숙함의 문제일 수도 있다. 타이핑도 자꾸 하면 맛이 생기지 않을까?
A5 크기의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가끔 일기도 쓰고 블로그에 올릴 글도 쓴다. 노트북 컴퓨터가 가방에 있는데도 펜과 노트를 꺼낼 때가 많다. 내가 구식이어서 그런가 보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책 읽는 사람이 모니터 보는 사람보다 더 적다고 일전에 여기에 쓴 적이 있는데, 노트에 손글씨 쓰는 사람은 더 없다. 그래서 노트북 들고 온 날은 손글씨 쓰면서도 앞에 노트북을 그냥 펼쳐두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