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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안 외워지는 걸까? 책을 몇 번이나 펼쳐보다가, 아예 그 부분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다. 마트 주차장에 주차하고도 위치 번호를 찍으니까,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익숙하다. 찾아보기도 편하고. 문득 이래서 안 외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요약해서 손으로 옮겨 적었을 것이고, 그러면서 저절로 외워지기도 했는데. 아니면 그냥 나이 탓일까?
금방 읽은 것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정말 예전 같지 않다. 그래서 읽으면서 중요한 내용은 타이핑해 두기로 했다. 빌린 책도 있어서 줄을 그을 수 없는 경우가 있어서 말이다. 어제도 그러는데, 읽던 책의 두 쪽이나 그대로 옮기고 있었다. ‘책이 내 손에 있는데, 왜 이러고 있지? 요약하느라 머리 쓰기 싫어서 몸을 쓰고 있다니. 내 언어로 써야 기억에도 잘 남는다던데.’
조그마한 노트 한 권을 들고 다니면서 일기 같은 것도 적고 생각도 적곤 한다. “23/3/7” 어제 그 노트 겉면에 적힌 이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노트를 쓰기 시작한 날짜를 호기롭게 적어둔 것이다. 문제는 오늘이 11월 20일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이 얇은 노트 한 권을 다 못 채우다니. 이러다가 해 넘기겠다.
이제는 읽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그래서 요약하고 메모해두려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문득 요약이 남기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임을 깨달았다. 버리기가 쉽지 않아서 요약이 어려웠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책 아주 구석에 있는 것까지 알아야 시험에서 고득점을 할 수 있었기에 지엽도 지엽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결국 요약도 욕심과의 전투였다.
자다가 잠깐 깨어 생각나는 꿈이나 아이디어는 대개 아침이면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요즘은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이용한다. 핸드폰 메모장에 실마리가 될 만한 단어 하나라도 남기려 한다. 아침이면 그 단어가 신종 암호가 되어 있거나, 초성만 남아 있어 새로운 도전 과제가 되기 일쑤이지만 말이다. 오늘 아침에도 알 수 없는 의미의 단어로 머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덕분에 잘 잤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았으면 그 내용 안 잊으려고 애쓰느라 깊이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책상 위에 종이 뭉치가 있어 뭔가 살펴보니, 카드 영수증 사이에서 메모지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병원 가서 진찰받을 때, 의사에게 얘기할 증세 목록과 질문할 내용이었다. 그거 꺼내 들고 보면서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이런 것도 잘 잊어버린다. 잠시 부끄럽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