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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농협 앞에 손으로 쓴 공고 하나가 붙어 있었다. “달력 없습니다.” 많이들 와서 달라고 했나 보다. 그러니 저런 표지까지 붙지 않았을까? 요즘 달력 주는 곳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예전에는 매일 뜯는 일력도 주곤 했었는데. 이런 얘기하면 완전 옛날 사람 티 내는 것이 되겠지만 말이다. 각박해져서 그렇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예전만큼 달력이 필요가 없어진 탓일지도. 이것도 스마트폰 때문 아닐까?
스마트폰 앱스토어의 광고에서 사람들이 하루에 백 번 이상 핸드폰을 열어본다는 문구를 봤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얼마 전 친구에게 얻은 조그만 계수기가 떠올랐다. 한번 세어볼까? 횟수도 중요하지만, 시간이 더 중요할 것 같기도 하고.
잠시라도 집중해서 책을 읽고 싶어, 스마트폰을 잠시 거실로 유배시키고 책상에 앉았다. 시계 본다는 핑계로 스마트폰 찾을 것 같아서 손목시계도 책상 위에 두었다. 조금 앉아 있으니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을 데려와 백색 소음 앱을 켤까 잠시 망설였다. 뒷일이 걱정되어 그만두었다.
또 새벽에 잠이 깼다. 무더위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다시 잠을 청해도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이왕 일어났으니, 일을 하거나 책을 보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안 되고, 스마트폰을 보게 된다. 스마트폰 무섭다.
“밤에 잠이 잘 안 온다고? 책을 읽어봐.” “그것도 해봤지.” “뭘 읽었길래?” “그냥 이것저것. 요즘은 책 읽어주는 동영상도 많더라고. 요약해 주는 것도 있고.” “스마트폰 화면 불빛에 잠이 더 달아나는 것 아니야? 종이책 읽어.” “그냥 소리만 듣지.” “중간중간 생각도 해 가면서 읽어야 제대로 읽는 거지. 그렇게 들으면 생각할 시간이 없잖아.”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멈췄다 읽을 수도 있고, 속도 조절도 가능해.”
오늘은 알람 소리에 갑자기 잠이 깼다. 보통은 그전에 잠이 살짝 깨어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정신이 없었다. 평소보다 알람이 일찍 울린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다른 식구까지 깨웠다. 알람이 왜 일찍 울린 것일까? 머지않은 미래에는 스마트폰의 장난을 의심해야 할지도 모를 것 같다.
어젯밤 자기 전에 모처럼 오롯이 집중해서 TV 영화 한 편을 봤다. 침대에 가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알람 때문에 침대 머리맡에 두려고 핸드폰을 찾았는데, 배터리가 다 되어서 죽어 있었다. 요즘 이놈 때문에 뭐든 ‘오롯이’가 어렵기는 하다.
자다가 깼는데, 거실 TV를 켜둔 채 잠든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일어나서 끄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러면 잠이 완전히 달아날 것 같았다. 머리맡에 둔 스마트폰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벌써 그런 앱도 만들어놨을 텐데, 그거 찾는 것도 잠깐 일어났다 눕는 것만큼 귀찮아졌다. 조만간 보는 사람 없으면 저절로 꺼지는 TV도 나오겠지. 아니면 이미 나와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