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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칼을 새로 샀다. 살짝이지만, 사자마자 손을 베었다. 칼날 모양도 두께도 예리함도 달랐다. 손잡이도. 한마디로 어색하고 불편했다. 최대한 비슷한 것으로 고른다고 골랐는데. 30년 넘게 사용하던 칼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부엌칼을 부러뜨렸다. 30년 넘게 사용하던 칼이다. 코코넛 과육 한번 먹어보겠다고 칼등을 고무망치로 여러 번 내려쳤는데, 손잡이에 가까운 칼날이 그만 부러졌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되자마자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미안하다. 수고했다.”고마웠다. 세월 탓일까? 그렇게 쉽게 갈지는 몰랐다. 그래도 몸 상할까 봐 고무망치를 사용했는데. 정말 미안하다. 그동안 이렇게라도 마음 전하려고 여기에 적는다.
아침에 사과를 깎으면서, 문득 이 칼은 언제부터 나와 있었나 궁금해졌다. 해 수를 꼽아보니 내년이면 30년이었다. 다 나 같은 사람이면 칼 장수 망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칼 하나도 다 못 쓰면서 30년이 지났다는 생각이 앞섰다. 나도 이 칼처럼 멀쩡하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