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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주셔도 되는데.”내가 사는 커피 원두로 내린 커피를 서비스로 한 잔 주시겠다는 가게 주인의 말에 내가 했던 말이다. 사실 여기에 약간의 진심도 담겨 있었다. 같은 원두라도 내가 집에 가서 내리면 그 맛이 안 날 것 같아서 말이다.
커피 원두를 사면 갈아달라고 한다. 마실 때마다 갈기 귀찮아서이다. 이번에도 커피 원두를 그렇게 사서 나오는데, 가게 주인이 맛보라면서 다른 원두를 서비스로 주었다. 그런데 공짜로 얻어가는 커피라서 갈아달라는 얘기를 못 하고 그냥 들고 왔다. 이제 그 커피를 마셔야 할 차례가 되었다. 귀찮아도 갈아서 먹어야 한다. 원두 갈면서 생각한다. ‘이렇게 하는 게 더 맛있다고 하잖아.’
최근에 커피를 좀 많이 마셨더니, 커피 원두가 생각보다 일찍 떨어졌다. 마지막 남은 커피를 내리면서, 물을 너무 많이 넣었다. 사 오기 전에는 더 없음을 몸이 알았던 것일까? 여하튼 바보 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 이번 커피의 마지막은 맛없는 커피가 되었다.
커피 사러 가야 한다. 집에 커피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원두 사러 가는 가게에서 문자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이달 말까지만 영업하니 그전에 남은 포인트 사용하라고.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연락까지 해주다니! 이 가게가 없어지는 것이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커피 원두 사서 내려서 마신다. 핸드드립용으로 갈아서 온다. 딱 그 정도 정성으로 즐긴다. 엄청나게 고급인 원두를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커피 믹스에 비하면 비싸다. 그래서 마음껏 즐기지 못하냐고? 그렇지는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향이 날아간다. 아끼면 뭐 된다. 다행히도.
이번에도 커피 원두를 사면서 잠깐 고민했다. 가게에 자주 마시는 원두에 두 종류가 있다. 쉽게 예기하면 보급형과 고급형이 있는데, 가격 차가 많이 난다. 고급형이 두 배다. 그래서 기호 식품이라고 하는 것일까? 한번 고급형을 맛보고는 다시 보급형으로 돌아가지를 못하고 있다. 이번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