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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TV 예능프로를 보면 언제 왜 웃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자막이 나온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조차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서 말이다. 역사나 인류의 발전 과정을 다룬 교양서도 사건 전개의 이유를 하나의 이유로 단순화하여 설명한 책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진실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이어도 말이다. 사람들이 점점 더 단순한 것에 길드는 것 같다. 고민하기 싫어서. 나도 마찬가지이고. 이렇게 바보가 되어 간다.
헌책방 가서 책을 자주 사는 편이다. 책이 깨끗해야 산다. 이름이 쓰여 있거나 밑줄이라도 그어져 있으면 대개 안 산다. 책을 매입하는 헌책방 주인 처지에서는 더 그렇지 않겠는가? 나 같은 손님이 대부분일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웬만하면 책에다 밑줄도 잘 안 긋는다. 그런데 낙서가 있는 책을 모으는 헌책방 주인의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다. 그 낙서를 통해서 사연을 추리하는 재미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도 하고.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교통비라도 아낄 요량으로 오늘은 동네 찻집을 찾았다. 늘 붐비는 곳이라 잘 안 가는 곳이다. 노트북 펼치며 자리에 앉았는데, 의자가 편치 않았다. 와이파이 비번 옆에 붙은 다음의 공지가 그 이유를 짐작하게 했다.“노트북 하시는 분들 너무 오래 계시지는 말아 주세요.”
‘월요일 아침’스럽게 노트북을 열었는데, 화려한 배경화면 사진에 기분이 확 좋아졌다. 사진 설명을 찾아보니 ‘자색수지맨드라미’라는 우리나라 산호였다. 이런 작은 것 하나에도 기분이 달라질 수 있다니!
“아, 바보!”아침에 마지막 남은 식빵 한 조각을 자르고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다. 가로세로 한 번씩 잘라 사분의 일로 조각내었는데, 오늘은 가로로 한 번만 잘랐어야 했다. 가로세로 길이가 달랐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세로로 자르고 만 것이다. 생각해보니 늘 세로로 먼저 잘랐던 것 같다. 이런 것까지 몸에 밴 것이 있다니!
“안 주셔도 되는데.”내가 사는 커피 원두로 내린 커피를 서비스로 한 잔 주시겠다는 가게 주인의 말에 내가 했던 말이다. 사실 여기에 약간의 진심도 담겨 있었다. 같은 원두라도 내가 집에 가서 내리면 그 맛이 안 날 것 같아서 말이다.
오늘 아침 마시는 커피, 유난히 달게 느껴진다. 설탕을 넣은 것도 아니고, 어제랑 다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침에 설 명절 기차표 예매에 성공했기 때문인 것 같다. 개선장군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소소한 곳에서라도 느낄 수 있어 다행이다.
최신 기술에 관한 교양서라도 조금 읽지 않으면, 조만간 뒷방 늙은이 소리 들을 것 같다. 그런데 잘 안 읽힌다. 어렵기도 하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다른 책을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살면서 몇 권이나 더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