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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된 보험에 관한 안내 메일이 왔다. 아마도 매달 오는 것 같다. 메일을 확인하고는 버리기는 뭐해서, 첨부된 파일을 이런 것들을 모아두는 폴더에 저장하려고 했다. 파일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파일을 덮어씌운다고 했다. 폴더를 열어보니 같은 이름으로 시작하고 뒤에 일련번호만 달리한 파일이 벌써 수십 개나 있었다. 모두 필요한 것일까? 왜 모으고 있는 것일까? 이런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사는 건 선택의 연속이다. 가끔 정말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앞일을 알 수 없으니, 정말로 어렵다. 속절없이 흘러만 가는 시간이 이때는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기한이 되면 한쪽을 택했을 테니까.
핸드폰 열고 9:12를 확인하고는 9/12(9월 12일)이라고 적고 메모를 끼적이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 알았다, 우연히 시각과 날짜가 일치했다는 사실을. 살다 보면 이런 우연이 자주 있는데, 괜히 자꾸 의미를 붙이려 한다.
책상 위에 놓인 결혼식 축의금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편의점에서 한 묶음 사서 사용하고는 남은 것이다. 봉투에 쓰인 ‘祝 結婚’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났다. 그 세 글자를 예쁘게 그리지 못해 편지 봉투 몇 장 버리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지금은 그 세 글자 안 보고 쓸 수나 있을는지 모르겠다.
컴퓨터 화면에 큼지막한 초시계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졌다. 아침에 있었던 추석 기차표 예매 현장의 잔재였다. 사는 것이 다 경쟁이고 치열하다.
좁은 길을 걷는데, 앞서 천천히 걷는 아줌마의 진로가 너무나 불규칙적이어서 도무지 앞질러 갈 용기가 생기질 않는다. 그렇다고 “실례합니다.”라고 얘기 꺼내고픈 생각도 없다. 요즘 내가 사는 게 딱 이런 것 같다.
매번 그러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주말을 앞두고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하겠다고 계획을 짠다. 예전에 시험공부 하던 학창 시절에 그랬고, 지난 주말에도 그랬다. 변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원래 그런 것인지, 내가 게으른 것인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에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잠에서 깼다. 아침에만 햇볕이 잘 드는 집이어서, 그 시간에 맞추어서 빨래를 예약했는데 세탁기가 조급증이 있는지 너무 일찍 돌린 것이다. 아랫집 아침잠도 깨운 것 아닐까? 몇 시 이후에 돌려야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