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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빈자리가 딱 하나밖에 없었다. 큰 테이블에 4명이 앉는 자리였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자리를 넓게 차지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 올려둔 가방의 끈이 내가 앉을 자리로 제법 많이 넘어와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으면 치워주리라 생각했었는데, 내가 자리에 앉아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항의의 표시로 내 가방을 그 가방끈에 닿도록 놓았다. 사실 테이블의 남은 공간만으로도 앉아서 책 보는 데 문제는 없었지만, 왠지 싫었다.
오랜만에 집에 손님이 와서 식사 준비하느라, 온 식구가 다 동원되었다. 이것도 사고 저것도 하고 바빴다. 손님이 올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밥통을 열어보니 밥이 없었다.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아침에 눈이 떨어지면 대개 핸드폰으로 뉴스를 검색한다. 그런데 스포츠 뉴스를 제일 먼저 본다. 스포츠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유가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끔찍한 뉴스가 나올 일이 거의 없기 때문 아닐까? 세상이 점점 더 흉흉해지고, 그런 뉴스로 하루를 시작하기는 싫고.
일요일 오전까지 내내 비가 온다는 예보와는 달리, 아침에 날씨가 좋았다.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니, 오늘은 조금 흐리지만 비 소식이 없는 걸로 예보가 바뀌었다. 비 안 올 때 하면 좋은 것들을 생각하느라, 갑자기 바빠졌다. 하늘을 보고 난 후가 아니라, 오늘 날씨 예보를 확인한 후에.
작년 건강검진 결과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기대 수명’이란 것이 있었다. 지금의 건강 상태로 내가 몇 살까지 살 수 있나를 예상한 것이라고 한다. 약간이지만 건강 상태가 내 나이 때 사람들의 평균은 넘는다고 했는데, 기대 수명이 팔십 대 중반이었다. ‘백 세 시대’라고들 하는데 말이다. 하고 다니는 말과 달리 나도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노력하는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아침에 사과를 깎으면서, 문득 이 칼은 언제부터 나와 있었나 궁금해졌다. 해 수를 꼽아보니 내년이면 30년이었다. 다 나 같은 사람이면 칼 장수 망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칼 하나도 다 못 쓰면서 30년이 지났다는 생각이 앞섰다. 나도 이 칼처럼 멀쩡하면 좋으련만.
내 앞에서 어르신이 정말로 열심히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하신지 자세도 뒤틀어져 있고 속도도 너무 느렸다. 좁은 인도여서 추월하려면 거의 스치고 지나야 한다. 어르신 모르게 지나갈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추월할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오십 미터 앞에 큰 길이 나오는 것을 보고 거기까지는 이대로 가기로 했다.
잠결에 유명한 영화배우 얼굴이 보였는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최근에 사람 이름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 더 기억해 내고 싶었다. 사실 몰라도 그만인데, 훈련이 필요하다고 느껴져서인지. 새벽녘에 간신이 이름을 떠올렸다. 나이 먹으면서 잃어가는 능력일 텐데, 그 자리를 다른 좋은 것으로 채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