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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눈 뜨자마자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혹시 햇볕이 나는 날인가 보려고. 장마철 빨래는 게릴라 전투처럼 해야 한다. 요즘은 다들 건조기 이용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왠지 이럴 때 더 햇볕에 말리고 싶어진다.
러닝셔츠만 입고 자다가 새벽에 추워서, 잠옷으로 입는 얇은 티셔츠를 입는 경우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절묘하게 이번에도 뒤집히고 앞뒤가 바뀌어서 있다. 아무리 어둡고 눈도 제대로 안 뜬 상태에서 입는다고 하지만, 어떻게 매번 똑같이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늘 똑같이 벗어두어선 그런 것 아닐까?’
부엌칼을 새로 샀다. 살짝이지만, 사자마자 손을 베었다. 칼날 모양도 두께도 예리함도 달랐다. 손잡이도. 한마디로 어색하고 불편했다. 최대한 비슷한 것으로 고른다고 골랐는데. 30년 넘게 사용하던 칼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부엌칼을 부러뜨렸다. 30년 넘게 사용하던 칼이다. 코코넛 과육 한번 먹어보겠다고 칼등을 고무망치로 여러 번 내려쳤는데, 손잡이에 가까운 칼날이 그만 부러졌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되자마자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미안하다. 수고했다.”고마웠다. 세월 탓일까? 그렇게 쉽게 갈지는 몰랐다. 그래도 몸 상할까 봐 고무망치를 사용했는데. 정말 미안하다. 그동안 이렇게라도 마음 전하려고 여기에 적는다.
0.9 밀리미터 샤프 연필을 이용한다. 심의 굵기, 잡는 느낌 등 제법 마음에 드는 놈을 하나 찾았다. 그래서 밖에 나갈 때도 그것 안 빠뜨리고 다니려고 잘 챙긴다.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다이어리는 연필로 적기 때문이다. 0.9 쓰는 사람이 잘 없어 빌리기도 어렵고. 어제 그냥 한 자루 더 샀다, 계속 가방에 넣어 두려고. 몇천 원 하지도 않는 건데, 내가 왜 그러고 있었는지.
오늘은 비도 안 오는데 길거리에 장화 신은 남녀가 많이 보인다. 유행인가 보다. 고무 같은 걸로 만들어져 바람도 안 통할 것 같은데 무릎까지. 무좀에 약한 나는 거저 줘도 못 신을 듯. 애가 신고 나간다면 말리지는 않을 거다. 나는 딱 그 정도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맡에 스프레이 모기약이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의 치열했던 모기와의 전쟁이 떠올랐다. 결국 내 머리 위에다가 융단폭격하고 나서야 잘 수 있었다. 문득 정말 옛날에 보았던, 입으로 부는 모기약이 떠올랐다. 믿기 어렵겠지만, 모기약 병의 뚜껑에 달린 장치를 입으로 불면 스프레이처럼 약이 분사되었던 것 같다. 요즘 주위에 있는 많은 것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 같다. 그런 게 있었다고 얘기하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소리 들으면서 말이다.
어젯밤 축구 경기를 전반전만 보고 잤다. 골은 안 났지만, 일방적인 경기였고 졸리기도 했고. 아침에 일어나니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축구가 원래 그렇다고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고. 나도 한때는 잘나갔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