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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사과를 깎으면서, 사과 하나를 여덟 조각으로 잘랐다. 반 가르고, 반 가르고, 반 갈랐다. 사과가 이렇게 작은데도 말이다. 늘 하듯이 그렇게 잘랐다. 처음 반 가르고, 셋으로 나누어도 되는데. 여섯 조각이 되도록 말이다.
요즘은 현금 쓸 일이 잘 없어, 가득 찬 영수증 버릴 때나 지갑 가운데를 펼쳐 보게 된다. 지갑 안에서 5유로 지폐 한 장이 발견되었다. ‘저걸 왜 다시 환전 안 했을까, 아깝게?’라는 생각도 물론 잠깐 했지만, 그보다는 얼마 전 다녀온 가족 여행이 먼저 생각났다. ‘아직 사진 정리도 못 했는데.’ 5유로 지폐를 지갑에서 꺼내려다, 도로 지갑에 넣었다.
아침에 노트북을 켜려고 했는데, 이미 켜져 있었다. 습관적으로 키를 하나 눌렀는데, 화면이 그대로 밝아졌다. 월요일 아침이고, 주말 내내 한 번도 노트북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내가 악독한 주인이었다. 너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대기 중이었구나.
아직 읽기 시작도 못 했는데, 가진 책의 신판이 나왔다. 내가 가진 것은 2판인데 3판이 나왔다는 것이다. 당초 계획은 2판을 헌책방에 팔아서 그 돈을 3판 사는 데 보탤 생각이었다. 그런데 책을 보니 2판이 3판보다 더 두꺼웠다. 종이가 얇아진 것이 아니라 쪽수가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내용을 줄였다는 얘긴데. 결국 2판 안 팔고 3판을 샀다. 이렇게 자꾸 늘리면 안 되는데.
찻집 꽤 괜찮은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자리에 앉으니 테이블의 고무 발 하나가 빠졌는지, 테이블이 기우뚱거리며 흔들렸다. 염두에 두었던 다른 자리는 그새 누가 앉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일단은 그냥 앉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앉고 보니 나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팔꿈치로 테이블을 누르게 되는데 그러면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 테이블은 내일도 이대로일 것 같다. 나도 나가면서 고치라고 얘기하지 않을 거라서 말이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제 집 인터넷이 고장 났다. 오늘 점심때나 되어야 수리 기사가 올 수 있다 했다. 핸드폰 데이터도 무제한이 아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책 좀 읽다가 일찍 잠들었다.
“지난번에 처방해드린 약은 잘 드셨습니까?” “한 번에 열두 알씩 정확히 세어서 챙겨 먹는 것도 힘들었지만, 식후 30분 말고 오후 세 시 반에 한 번 더 먹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처방해드린 겁니다.”
재밌는 영화 한 편 같은 꿈을 꾼 것 같은데, 늘 그렇듯 이야기를 옮기려니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는 것 같았는데. 아쉽다. 그런데 뭐가 아쉬운 것일까? 이야기가 생각이 나질 않아서? 현실과는 너무나 먼 얘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