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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맛집으로 알려진 조그만 빵집이 하나 있다. 일주일에 나흘만 영업하고, 그나마도 오후에나 문을 연다. 어쩌다 때맞추어 그 앞을 지나면 가게 밖으로 늘어선 손님들 줄을 보거나 ‘재료 소진’이라는 표지를 보기 일쑤이다. 오늘도 ‘재료 소진’으로 문이 닫혀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도의 상술일까? 아니면 정말로 돈 욕심이 없는 것일까?’
찻집 옆 테이블의 소리가 넘어왔다. “나는 그 데이터 내가 짠 프로그램으로 모으고 있지.” “역시 머리 좋은 놈은 다르네. 그런 것도 쉽게 하고.” “네가 그렇게 프로그램 짤 수 있으면 그게 불공평한 거지. 너는 나만큼 코딩 공부 안 했잖아.”
어젯밤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열 쪽만 더 읽으면 삼백 쪽짜리 책을 한 권 다 읽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를 않았다. 많이 졸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열 쪽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에 그렇게 했다. 금방 끝내겠다는 생각에 내용보다는 쪽 수에 더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읽으면 달라질까?
어두워지면서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초등학교 옆의 좁은 길을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아 그냥 건너는 사람도 많지만, 초등학교 바로 옆이라 신호를 더 잘 지키려 하는 곳이다.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가 종종걸음으로 길을 건너면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힐끔 쳐다보고 간다. 공범이라도 되어달라는 것일까?
읽다 만 삼국지 5권을 다시 집었다. 제갈공명 사후에 진도가 서서히 떨어지더니만 마침내 읽기를 멈추었던 책이다. 삼국지 처음 읽는 것도 아니지만, 오늘 갑자기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새삼 큰 뜻이라도 품으려는 것일까? 그냥 연말이 되니 이런저런 마무리가 생각나서이지 않을까?
예전에 사 두고 안 읽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와 서문을 읽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다른 책의 후속작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책은 집에 없었고. 그래서 안 읽은 책이었는데, 그 사실마저 잊고 있었다.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았다.
“맙소사!, 세상에나!” 아침에 문득 한 친구가 자주 사용하는 감탄사가 떠올랐다. 그러고는 머릿속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어떤 감탄사를 자주 내뱉을까?’ 그런데 답이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았다. 세상사에 무덤덤해진 것은 아닌지.
조그마한 노트 한 권을 들고 다니면서 일기 같은 것도 적고 생각도 적곤 한다. “23/3/7” 어제 그 노트 겉면에 적힌 이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노트를 쓰기 시작한 날짜를 호기롭게 적어둔 것이다. 문제는 오늘이 11월 20일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이 얇은 노트 한 권을 다 못 채우다니. 이러다가 해 넘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