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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있는 한 분야의 책을 좀 모았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그런데 집에 오면서 생각하니 자랑이 아니었다. 다 고만고만한 입문서들뿐이었다. 입문서만 자꾸 읽으면 무엇 하는가? 변죽만 울리고 있다.
간발의 차로 아파트 1층 현관문이 닫히고 말았다. 조금만 빨리 도착했으면 비밀번호를 누르는 수고를 덜 수도 있었다. 유리문을 통해 택배기사가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비밀번호를 누르면서 엘리베이터에 탄 택배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낯이 익은 아저씨였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그냥 올라갔다, 내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다가갔을 때. 기다려 줄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먹고 사는 문제이니까. 그래도 기대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인터넷 헌책방을 검색하는데, 몇 달째 찾던 책이 근처 헌책방에 나와 있었다. '어제도 근처에 갔었는데, 왜 찾아보지 않았을까? 내가 갈 때까지 남아 있을까?' 사실 서점에서 살 수 없는 책도 아니다. 그냥 새 책 사기에는 조금 아까운 그런 책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조바심이 나는 것일까? 고작 몇천 원 아끼겠다고?
거의 매일 하는 모바일 게임이 있다. 처음보다 흥미가 많이 떨어졌지만, 계속하게 된다. 자꾸 새로운 미션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는 것도 그래서 자꾸 숙제가 주어지는 것 아닐까?
어젯밤 나를 괴롭힌 것이 모기가 맞았다. 11월이 코앞인데 모기라니! 모기가 아직 기승이라고 아침 뉴스에 나왔다. 불을 켜고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리까지 들었는데, 나보다 뉴스를 더 믿고 있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랬더니, 동영상을 검색하고 있다. 그래서 깨우치겠느냐고 하니까, 자기는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고민하기 싫고 귀찮다’의 다른 표현일뿐이다. 머리 좋아지라고 생각해보라고 했는데 말이다.
어젯밤 잠이 샜다. 억지로 다시 자려고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 머리맡에 두었던 핸드폰을 집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이어졌다. ‘핸드폰 대신 곁에 책을 두었어야 했는데.’ ‘아니, 책은 일어나서 불도 켜야 하잖아. 책이 있어도 핸드폰 찾지 않을까?’ 결국 핸드폰으로 동영상 한참 보다가 다시 잤다. 핸드폰으로 전자책 읽어도 되었는데 말이다.
동영상 자주 안 보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가끔 보지만 웬만하면 안 보려고 노력한다고 대답했다. 보다 보면 시간이 너무 잘 지나가서 그런다는 이유를 덧붙이면서 말이다. 요즘 책을 너무 안 봤다고 얘기하니까, 요즘은 책보다 책 내용 강연 동영상이 더 낫다고 했다. 1.5배속으로 핵심만 빨리 볼 수 있고, 빨리 볼 수 있으니까 필요하면 반복해서 보면 된다고 했다. 그게 더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면서 말이다. 정말로 책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