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볍게 읽을거리가 마땅치 않다며 서점을 자꾸 기웃거렸는데, 메일함에 읽지 않은 메일이 수만 통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대부분 스팸이지만, 괜찮은 정보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가입해둔 메일 서비스에서 온 것들도 많이 있다. 매일 이것들만 읽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런데도 자꾸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은 읽을 것이 아니라 가질 것에 대한 욕심 아닐까?
요즘 자기계발서와 달리 대놓고 따끔하게 야단치는 책 한 권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다. 그야말로 ‘꼰대스러운’책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끌린다. 책 내용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그 꼰대스러움 때문인 것 같다. 제법 나이를 먹고 나니까, 내게 뭐라고 하는 어른이 없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도서정가제 때문에 도서 사은품도 약간의 비용을 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은품이 있어도 선택을 잘 안 하는데, 이번에는 아이디어에 끌려 같이 주문했다. 그냥 천으로 만든 주머니인데, ‘북주머니’라는 이름에 혹했다. 책을 큰 가방에 그냥 넣으면 때도 타고 구겨질 수도 있으니까 책 크기랑 비슷한 주머니에 먼저 넣으라는 것이었다. 책을 엄청나게 아끼는 누군가의 멋진 아이디어였다.
리모컨으로 인터넷 TV 방송 채널을 빠르게 돌아다녀 보지만 볼 게 없다. 공중파 채널밖에 없는 시절에도 안 그랬는데, 왜 그럴까?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손가락을 놀려 채널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다. 혹시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는 것이 있을까 해서. 밥도 오래 씹어야 단맛이 나는데. 이렇게 계속 돌리고만 있으니 어찌 재미를 느끼겠는가?
동네에 맛집으로 알려진 조그만 빵집이 하나 있다. 일주일에 나흘만 영업하고, 그나마도 오후에나 문을 연다. 어쩌다 때맞추어 그 앞을 지나면 가게 밖으로 늘어선 손님들 줄을 보거나 ‘재료 소진’이라는 표지를 보기 일쑤이다. 오늘도 ‘재료 소진’으로 문이 닫혀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도의 상술일까? 아니면 정말로 돈 욕심이 없는 것일까?’
찻집 옆 테이블의 소리가 넘어왔다. “나는 그 데이터 내가 짠 프로그램으로 모으고 있지.” “역시 머리 좋은 놈은 다르네. 그런 것도 쉽게 하고.” “네가 그렇게 프로그램 짤 수 있으면 그게 불공평한 거지. 너는 나만큼 코딩 공부 안 했잖아.”
어젯밤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열 쪽만 더 읽으면 삼백 쪽짜리 책을 한 권 다 읽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를 않았다. 많이 졸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열 쪽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에 그렇게 했다. 금방 끝내겠다는 생각에 내용보다는 쪽 수에 더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읽으면 달라질까?
어두워지면서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초등학교 옆의 좁은 길을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아 그냥 건너는 사람도 많지만, 초등학교 바로 옆이라 신호를 더 잘 지키려 하는 곳이다.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가 종종걸음으로 길을 건너면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힐끔 쳐다보고 간다. 공범이라도 되어달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