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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까지 내내 비가 온다는 예보와는 달리, 아침에 날씨가 좋았다.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니, 오늘은 조금 흐리지만 비 소식이 없는 걸로 예보가 바뀌었다. 비 안 올 때 하면 좋은 것들을 생각하느라, 갑자기 바빠졌다. 하늘을 보고 난 후가 아니라, 오늘 날씨 예보를 확인한 후에.
작년 건강검진 결과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기대 수명’이란 것이 있었다. 지금의 건강 상태로 내가 몇 살까지 살 수 있나를 예상한 것이라고 한다. 약간이지만 건강 상태가 내 나이 때 사람들의 평균은 넘는다고 했는데, 기대 수명이 팔십 대 중반이었다. ‘백 세 시대’라고들 하는데 말이다. 하고 다니는 말과 달리 나도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노력하는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아침에 사과를 깎으면서, 문득 이 칼은 언제부터 나와 있었나 궁금해졌다. 해 수를 꼽아보니 내년이면 30년이었다. 다 나 같은 사람이면 칼 장수 망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칼 하나도 다 못 쓰면서 30년이 지났다는 생각이 앞섰다. 나도 이 칼처럼 멀쩡하면 좋으련만.
내 앞에서 어르신이 정말로 열심히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하신지 자세도 뒤틀어져 있고 속도도 너무 느렸다. 좁은 인도여서 추월하려면 거의 스치고 지나야 한다. 어르신 모르게 지나갈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추월할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오십 미터 앞에 큰 길이 나오는 것을 보고 거기까지는 이대로 가기로 했다.
잠결에 유명한 영화배우 얼굴이 보였는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최근에 사람 이름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 더 기억해 내고 싶었다. 사실 몰라도 그만인데, 훈련이 필요하다고 느껴져서인지. 새벽녘에 간신이 이름을 떠올렸다. 나이 먹으면서 잃어가는 능력일 텐데, 그 자리를 다른 좋은 것으로 채울 수 있기를.
도서관에서 여행책 몇 권을 한꺼번에 빌렸고, 어제가 반납일이었다. 당연히 다 못 읽었다. 한 권은 표지가 좀 낡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제 도서관에 가서야 처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그 책이 제일 좋았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다 읽을 능력은 없고. 반납 당일에는 다시 대출도 안 되니. 오늘 도서관에 가는 시간까지 그 책이 남아 있기를 기다릴 수밖에. 그러니 책 제목을 여기서 밝히지 못함을 이해해 주시길.
잠을 설쳤다. 새벽 2시부터 한 시간에 한 번씩 눈이 떠졌다. 기차표 예매는 7시부터였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평소처럼 일어나면 되는데 말이다. 늦더위 탓일 수도 있다. 자다 일어나 창문을 열었을 정도였다. 모기 탓일 수도 있다. 방문을 닫아 퇴로를 차단하고, 방바닥이 미끄러울 정도로 약을 뿌렸다. 이래저래 피곤한 아침이다.
책갈피를 지금 읽는 줄 아래에 대고 책을 읽고 있다. 책 읽는 속도가 책갈피 내리는 속도에 따라가는 것 같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 묶인 것처럼. 책을 조금 빨리 읽게 되기는 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을 왜 읽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