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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부터 기차표 예매가 된다는 것을 듣고는 졸리는 눈을 비벼가며 12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12시가 되자마자 잽싸게 예매 준비를 눌렀건만 발매 개시 준비 중이라는 문구만 떴다. 어설프게 알아서 화근이 될 뻔했다. 이른 새벽부터 파는 것이면 이런다고 일찍 자지 않은 것을 책망하고 있지 않았겠나. 다행히 발매 개시가 그리 이른 시각은 아닌 것 같다.
반납할 책들이 있어 동네 도서관을 찾았다. 이 시간에는 당연히 빈자리가 없다는 생각에 다른 책은 들고 가지 않았다. 무거우니까. 그런데 책을 반납하고 도서관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근처 서가에서 손에 잡히는 아무 책이나 한 권을 들고 그 자리로 돌진했다. 어찌 알겠는가? 이렇게 만난 책이 내 인생을 바꿀지도.
한참을 뒤척이다 간신히 잠들었건만 꼭두새벽에 다시 잠이 깼다. 추워서 그런가 해서 이불도 하나 더 덮어보고 어려운 책도 읽어봤지만, 소용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라고는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연말.
오랜만에 영화 한 편 보려 했는데, 자동차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어 있었다. 이것이 마치 무슨 계시라도 되는 것처럼 이런저런 핑계들이 딸려 나왔다. 영화평이 별로라든지, 식사 시간이 애매하다든지. 결국 예매한 영화표를 취소했다. 집에 들어오면서 다시 생각하니 가장 큰 이유는 갑자기 닥친 강추위였다. 이것도 나이 탓일까? 예전 같으면 그래도 기를 쓰고 갔을 것 같기도 하고.
입학시험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문학 작품 요약집이 서점에 나와 있다고 한다. 드라마나 영화도 요약본으로 본다고 한다. 뉴스 요약도 있고. 그렇다면 애당초 요약본만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고 누가 묻지 않을까?
잠시라도 집중해서 책을 읽고 싶어, 스마트폰을 잠시 거실로 유배시키고 책상에 앉았다. 시계 본다는 핑계로 스마트폰 찾을 것 같아서 손목시계도 책상 위에 두었다. 조금 앉아 있으니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을 데려와 백색 소음 앱을 켤까 잠시 망설였다. 뒷일이 걱정되어 그만두었다.
지금 산 커피는 마시려고 샀다고 할 수 없다. 도서관이어서 자릿값 낼 필요도 없다. 당연히 누구랑 얘기 나누면서 대화의 공백을 메꾸기 위함도 아니다. 추워서 손 좀 녹이려 샀다. 그래서 아직 뚜껑도 열지 않았다, 빨리 식을까 봐.
참 희한하게도 요즘 집에서 내려 먹는 이 커피는 식어야 더 맛이 있다.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산미가 더 강해진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을 수 있고. “별나다! 다 식은 커피 버려야지. 무슨 맛으로 먹나?” 아침에 일어나서 텀블러에서 밤새 식은 커피 마시고 있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같은 사람도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다, 세상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