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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사과를 깎으면서, 문득 이 칼은 언제부터 나와 있었나 궁금해졌다. 해 수를 꼽아보니 내년이면 30년이었다. 다 나 같은 사람이면 칼 장수 망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칼 하나도 다 못 쓰면서 30년이 지났다는 생각이 앞섰다. 나도 이 칼처럼 멀쩡하면 좋으련만.
내 앞에서 어르신이 정말로 열심히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하신지 자세도 뒤틀어져 있고 속도도 너무 느렸다. 좁은 인도여서 추월하려면 거의 스치고 지나야 한다. 어르신 모르게 지나갈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추월할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오십 미터 앞에 큰 길이 나오는 것을 보고 거기까지는 이대로 가기로 했다.
잠결에 유명한 영화배우 얼굴이 보였는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최근에 사람 이름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 더 기억해 내고 싶었다. 사실 몰라도 그만인데, 훈련이 필요하다고 느껴져서인지. 새벽녘에 간신이 이름을 떠올렸다. 나이 먹으면서 잃어가는 능력일 텐데, 그 자리를 다른 좋은 것으로 채울 수 있기를.
도서관에서 여행책 몇 권을 한꺼번에 빌렸고, 어제가 반납일이었다. 당연히 다 못 읽었다. 한 권은 표지가 좀 낡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제 도서관에 가서야 처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그 책이 제일 좋았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다 읽을 능력은 없고. 반납 당일에는 다시 대출도 안 되니. 오늘 도서관에 가는 시간까지 그 책이 남아 있기를 기다릴 수밖에. 그러니 책 제목을 여기서 밝히지 못함을 이해해 주시길.
잠을 설쳤다. 새벽 2시부터 한 시간에 한 번씩 눈이 떠졌다. 기차표 예매는 7시부터였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평소처럼 일어나면 되는데 말이다. 늦더위 탓일 수도 있다. 자다 일어나 창문을 열었을 정도였다. 모기 탓일 수도 있다. 방문을 닫아 퇴로를 차단하고, 방바닥이 미끄러울 정도로 약을 뿌렸다. 이래저래 피곤한 아침이다.
책갈피를 지금 읽는 줄 아래에 대고 책을 읽고 있다. 책 읽는 속도가 책갈피 내리는 속도에 따라가는 것 같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 묶인 것처럼. 책을 조금 빨리 읽게 되기는 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을 왜 읽는데?’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다녀야 글쓰기 생산성이 올라간다. 알면서도 무릎 건강을 핑계로 종이 노트 들고 다닌다. 손글씨가 주는 맛도 내세우면서 말이다. 질보다 양이 우선일 때도 있다. 익숙함의 문제일 수도 있다. 타이핑도 자꾸 하면 맛이 생기지 않을까?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 책이 구판임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읽던 책은 5년 전에 출판되었고, 올해 나온 신판이 있었다. 열심히 읽던 책이 갑자기 읽기가 싫어졌다. 책의 내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