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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에서 주문하러 계산대로 갔다. 그런데 종업원이 어찌 당황하며 뭔가 말을 할까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신입이라서 그런 거라 생각하며 주문을 마쳤다. 자리에 앉아서 보니 입구에 키오스크가 있었다. 그제야 종업원의 그 표정이 이해가 갔다. 키오스크에 가서 주문하라는 얘기를 할까 말까 망설였던 것이다. 어느새 그런 나이가 되었다, 서글프게도. 앞에 앉은 친구에게 일부러 키오스크 못 봤다는 얘기를 크게 했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알람을 맞추면, 대개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일찍부터 잠이 깬다. 알람이 울리기 몇 시간 전에. 이것도 나이 탓일까? 잠이 없어져서?
요즘 동네 도서관은 독서실 같지는 않다. 그래도 내가 자주 찾는 이 도서관은 찻집처럼 음악이 흘러나오지는 않는다. 물론 그런 곳도 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을 외우는 것 같았다. 거슬려서 고개를 돌렸는데, 눈이 마주쳤다. 본인도 아는 듯했다. 잠시 그 소리가 멈추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지 금방 이어졌다. 내 손글씨 쓰는 소리는 괜찮은지 신경이 쓰였다.
가끔 저자의 평생 공부가 녹아든 책을 만날 때가 있다. 나 같으면 이렇게 헐값에 남들에게 알려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까워서. 게다가 이 책은 최근에 정가를 낮추었다. 왜? 박리다매가 더 유리하다 생각했을까? 그저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하려는 것 아닐까? 돈보다도 그냥 사라지는 것이 싫어서.
작고 가벼운 멀티탭을 샀다. 핸드폰 충전기 등의 여러 전기용품을 생각하면 콘센트가 모자랄 게 뻔하니까. 미처 생각 못 한 것이 있을 것 같아, 도서관에서 여행안내서도 빌려왔다. 그런데 다 준비해가면 여행이 재미있을까?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야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지 않나? 어차피 아무리 준비해도 완벽할 수는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준비에 대한 의욕이 떨어졌다. 이런 내려놓음 또한 여행의 준비 아닐까?
여행 가려는 곳에 소매치기가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얼마 전에 먼저 다녀온 친구로부터 직접 당한 얘기를 들으니 그 무게가 달랐다. 앞으로 매는 가방, 지퍼에 달 자물쇠 등 자질구레하게 준비할 것이 갑자기 늘어났다. 여행은 준비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즐길 시간이 더 늘었다.
편의점에서 원플러스원이어서 자주 먹던 음료 두 캔을 들고 계산대로 갔더니 하나를 더 들고 오라고 했다. 투플러스원 제품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원플러스원 음료로 바꾸기도 민망하여 그냥 하나 더 들고 갔다. 마치 그냥 두 캔 사려고 했는데 하나 더 공짜로 얻었다는 듯이.
자려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침대 옆 벽에 시꺼먼 그림자가 보였다. 불을 껐는데? 반대편을 보니 책상 위에서 새로 산 마우스가 약한 빛을 내고 있었다. 무엇의 그림자일까 궁금해서 다시 보려고 몸을 움직이는 순간 그 그림자도 움직였다. 내 그림자였다. 내 그림자인데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