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상 위가 또 어지러워졌다. 읽다 만 책이 여섯 권을 비롯하여, 우편물, 필기구 등이 쌓여 있다. 마치 강력한 블랙홀이 책상 위 어딘가에 있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이쪽으로 빨아들이는 것 같다. 이러면 책상에 앉기가 싫어진다면서 열심히 치웠는데 말이다, 불과 며칠 전에.
국가대표 축구팀 경기를 보러 간다. 처음이다. 운 좋게 표를 구했다. 솔직히 응원하고 즐기는 것보다 지금껏 안 해본 것 한번 해본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이제는 그런 나이에 접어들었다.
일어나면서 큰 깨달음을 얻는 날의 아침은 여느 아침과 다를까? 그 깨달음이란 것도 자면서 꾸는 꿈처럼 왔다가 금방 다시 가버리는 것 아닐까? 못 가게 막는 방법은 깨달은 대로 움직이는 것뿐임은 이미 깨달았는데, 이 깨달음 또한 매번 그냥 다시 가버리고 만다.
TV 채널을 돌리는데, 복권 추첨 방송이 나왔다. 막 마지막 숫자가 발표되고 있었다. 복권 샀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건만, 마지막 숫자가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또 왜 그렇게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지. 차라리 방송 못 봤으면, 조금 더 복권의 효용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알람 소리에 놀라 일어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에이, 주말인데 바보같이 알람을 안 껐네.’ 알람 끄다가 핸드폰을 보니, 수요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것이 더 안타까울까? 오늘이 주말이 아닌 것과 벌써 주말인 것 중에서.
소변기 앞에 서서 바지 지퍼를 내리는데, 변기 옆에 붙은 엄지손톱보다 작은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한껏 흘겨서 옆을 보는 눈동자 모양이었다. 누가 이걸 여기에다 붙여둘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잠시나마 웃었다.
주방 가스레인지 위의 후드 필터 청소가 늘 문제였다. 틈에 낀 기름 제거가 쉽지 않았다. 이번에는 인터넷 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청소한 것 중 최고였다. 영상을 보고 그대로 따라 했다. 글로 된 설명이었다면 잘할 수 있었을까? 이러니 사람들이 동영상만 보려고 하지. 글보다 동영상이 더 적합한 분야가 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며칠 전 큰마음 먹고 책상 위를 정리했다. 읽다 만 책도 책장에 꽂고, 필요 없는 출력물도 버렸다. 오늘 아침 책상 위를 보니, 다시 읽다 만 책과 잡동사니들이 점령군이 되어 있었다. 끝이 없는 전쟁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