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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다. 분명히 내가 내는 만년필 펜촉이 종이 긁는 소리가 노트북 타이핑 소리보다 작은데 신경이 쓰인다. 당연시된 타이핑 소리는 일반적인 것이고, 이 소리는 특이한 것으로 여겨질 것 같기 때문일까? 요즘 동네 도서관에서는 책장 넘기는 소리도 잘 안 들린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책보다 강의 동영상에 더 열심이기 때문일까?
"그거 지난번에 내가 다 얘기해줬잖아. 한 세 번은 얘기한 것 같다." "그때는 내가 관심이 없었지. 그래서 그냥 듣고 흘렸었지." 필요할 것 같아 생각해서 알려줬었는데, 그때는 그냥 아는 척, 잘난 척이었다.
다 필요하니까 같이 책 보고 공부하자고 얘기하면, 대개의 요즘 반응은 이렇다. "이 나이에 공부는?" "그런 거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어? 잘 아는 사람 사서 시켜야지." "요즘 누가 책 보냐? 요점만 쏙쏙 동영상이 얼마나 많은데." "네가 읽고 좀 알려 줘. 아니, 그냥 네가 해 줘."
내비게이션이 지금 출발하면 어떤 경로로 가도 많이 막힌다고 한다. 1시간쯤 있다가 출발하는 것이 더 나을까? 어디 찾아보면 지난주 이맘때 얼마나 걸렸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지난주 결과가 오늘도 맞을까? 알 수 없다.
침대 옆에 책을 한 권 두었다. 그랬더니 핸드폰 만지작거리다 자기 전에 몇 쪽이라도 읽는 경우가 생겼다. 그래서 거실 TV 앞에다 얼마 전에 산 푸쉬업 바를 두었다. 그러면 혹시 팔굽혀펴기 몇 번이라도 하게 될 것 같아서 말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다니.
도서관 창가 자리에서 블라인드 내리던 중년의 한 남자, 그 앞에 있던 선인장 화분을 넘어뜨렸다. 그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 남자는 신속히 화분을 다시 세운 후에 손으로 책상 위에 떨어진 흙을 손으로 긁어모아 화분에 쓸어 담았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달리 어쩌겠는가?
콜센터 예상 대기시간이 6분 24초라는 얘기에 상담 예약 신청하겠다고 핸드폰 번호를 남겼다. 왜 그랬을까, 도서관에서? 전화 오면 조용히 뛰쳐나갈 수 있을까? 잠시 후 전화가 왔다. 나름대로 서둘렀건만 전화가 끊어졌다. 또 전화가 와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콜센터로 다시 전화했다. 이번에도 예상 대기시간은 6분이라고 했다. 그런데 30초 남짓 기다리니까 통화가 연결되었다. 콜센터 입장에서는 비관적인 대기시간을 알려줄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읽다 만 소설책을 펼쳤다. 장편 SF 시리즈 6권 중 3권의 51쪽과 52쪽 사이에 갈피끈이 있었다. 앞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이 나지 않아도 그냥 읽으려 했는데, 다행히 몇 쪽 읽고 나니 어렴풋하게나마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늘은 밑줄 긋거나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읽을 필요가 없는 그런 책을 읽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