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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저자의 평생 공부가 녹아든 책을 만날 때가 있다. 나 같으면 이렇게 헐값에 남들에게 알려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까워서. 게다가 이 책은 최근에 정가를 낮추었다. 왜? 박리다매가 더 유리하다 생각했을까? 그저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하려는 것 아닐까? 돈보다도 그냥 사라지는 것이 싫어서.
작고 가벼운 멀티탭을 샀다. 핸드폰 충전기 등의 여러 전기용품을 생각하면 콘센트가 모자랄 게 뻔하니까. 미처 생각 못 한 것이 있을 것 같아, 도서관에서 여행안내서도 빌려왔다. 그런데 다 준비해가면 여행이 재미있을까?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야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지 않나? 어차피 아무리 준비해도 완벽할 수는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준비에 대한 의욕이 떨어졌다. 이런 내려놓음 또한 여행의 준비 아닐까?
여행 가려는 곳에 소매치기가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얼마 전에 먼저 다녀온 친구로부터 직접 당한 얘기를 들으니 그 무게가 달랐다. 앞으로 매는 가방, 지퍼에 달 자물쇠 등 자질구레하게 준비할 것이 갑자기 늘어났다. 여행은 준비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즐길 시간이 더 늘었다.
편의점에서 원플러스원이어서 자주 먹던 음료 두 캔을 들고 계산대로 갔더니 하나를 더 들고 오라고 했다. 투플러스원 제품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원플러스원 음료로 바꾸기도 민망하여 그냥 하나 더 들고 갔다. 마치 그냥 두 캔 사려고 했는데 하나 더 공짜로 얻었다는 듯이.
자려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침대 옆 벽에 시꺼먼 그림자가 보였다. 불을 껐는데? 반대편을 보니 책상 위에서 새로 산 마우스가 약한 빛을 내고 있었다. 무엇의 그림자일까 궁금해서 다시 보려고 몸을 움직이는 순간 그 그림자도 움직였다. 내 그림자였다. 내 그림자인데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할인매장 입구에 타임 세일을 알리는 타이머가 켜졌다. 사람들이 매장 입구로 몰렸고, 누군가 매장을 나와야 들어갈 수가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매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타이머를 확인하면서 재빨리 바구니에 물건을 담았다. 계산하면서 세일에 낚여 과소비한 것 아닐까 걱정하다가, 영수증에서 ‘반품 가능 기한’을 발견하고는 마음을 놓았다.
예전에 가방 사면서 받은 조그만 자물쇠가 있었다. 가방 지퍼에 달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자물쇠가 필요해서, 며칠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 불현듯 생각이 났다, 어디 들고 나갔다고 잃어버리고 왔음이. 왜 있었음과 달리 없어졌음은 잊고 있었을까? 그 자물쇠는 기억 속에만 있었던 것이다.
점심시간에 은행에 갔더니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요즘 은행 업무가 복잡해져 오래 걸리기도 해서, 한참을 기다릴 것을 각오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내 앞에서 번호표를 뽑은 사람이 투덜대기 시작했다. 창구 직원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동작이 굼뜨다고 불평을 했다. 나는 그 사람의 불평에 짜증을 내려다 참았다.